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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피플]요양원 사랑의 진료 4년 정승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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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06-07-03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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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요양원 사랑의 진료 4년 정승기 원장
서울 북서쪽 끝머리, 구파발에서 벽제로 갈라지는 삼거리 다리밑. 노인전문 요양원 ‘사랑채’에는 매달 둘째, 네째 목요일 ‘병원놀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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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꽂은 원장님과 3~4명의 간호사들이 나타나면 조용하던 요양원이 갑자기 술렁댄다.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입만 빼고 안 아픈 곳이 없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응석이 휠체어 바퀴를 바쁘게 굴린다.

“만날 이렇게 아파서 어떡해요. 아파도 자꾸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정승기 원장(48·사진 오른쪽)은 장작개비처럼 바짝 마른 할머니의 두 다리를 접었다 펴고, 마른 손등을 팍팍 문지른다. 하얗고 복스럽던 치아는 다 어디로 갔는지 대문니 하나만 달랑 남은 할아버지는 흘러내리는 침을 주체하지 못해 빨간 앞치마를 턱받이로 쓰고 있다. 알아듣기도 힘든 할아버지 말을 정원장은 귀신같이 알아듣고 가벼운 눈짓을 간호사에게 보낸다. 작은 파스라도 부쳐줘야 안심하는 할아버지다. 널찍한 치료실에 20명 남짓한 노인들이 진료를 받고 돌아가자 방에서 나올 힘도 없는 노인분들을 위해 정원장은 일일이 방문을 두드린다.

“노환에 특효약이 따로 있겠습니까? 관심을 가져 주는 게 가장 좋은 치료약이죠.”

아침 나절에 시작된 진료는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겼다. 병원으로 돌아가 오후 진료를 해야 하는 정원장의 발걸음이 바쁜데, 종묘공원에서 무료급식을 끝내고 오던 요양원 원장 김금복 목사와 마주쳤다. 정원장이 ‘사랑채’에서 무료 진료를 시작한 지 4년,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다. 정원장과 김목사는 옷깃을 스친 인연도 없지만 서로에게 은인이다. 김목사가 요양원을 열어놓고 의사가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정원장이 무료 진료를 자청했다.

“4년 전 겨울이었어요. 목사님 사모님이 집수리를 하다 떨어져 저희 병원에 오셨는데, 병상에 누워서도 온통 요양원 걱정만 하시더라고요.”

정원장은 몸과 마음을 던져 이웃에 헌신하는 김목사 부부 얘기를 듣고 1주일에 하루씩 이곳에 오기로 다짐했다. 경찰관 출신의 목사님으로 유명한 김금복씨(56). 순찰 중에 만난 결식 노인들을 보면서 박봉을 털어 그들의 점심을 사주다가 아예 제복을 벗고 ‘밥퍼 목사님’으로 나섰다. 경찰옷을 벗은 지 15년, 무료급식 현장서 그는 여전히 ‘현역경찰’이다.

“하루 300~500명씩 밥을 먹이다 보면 음식을 나누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는 ‘밥퍼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툼의 대부분은 ‘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새치기’ 등 질서를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사고가 더 많다고 했다. 당국의 융통성없는 제도와 법규, 막무가내식 단속이 그의 사기를 꺾어놓기도 한다. 외국인들 보기도 그렇고 하니 노상에서 밥주는 일을 그만하라는 압력이 그런 것. 그 때문에 식판을 엎어버리길 여러번 했다는 김목사는 그래도 이 일이 ‘소명’같아서 멈추질 못한다.

“여길 보세요. 50~60명의 식구들이 살지만 이 중에서 자기 밥벌이를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 살아가잖아요. 모두 다 정원장 같은 보이지 않는 손길 덕분이죠.”

정승기 원장과 김금복 목사. 두 사람은 혈연으로도 지연으로도 학연으로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연한 만남’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부축하면서 배우고 느끼면서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글 김후남·사진 김영민기자 kn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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